겨울의 안동은 말수가 적어집니다.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대신,
시간과 기억이 조용히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눈이 내린 날 찾은 임청각은
화려한 풍경보다
묵묵히 견뎌온 세월로 다가옵니다.
이곳은 단순한 고택이 아니라
조상의 민족혼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공간입니다.
겨울의 적막 속에서 임청각은
우리에게 과거를 바라보는 법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겨울 안동,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계절
겨울의 안동은 유난히 고요합니다.
관광지의 분주함 대신
바람 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남아
시간이 한층 느리게 흐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로
안동 임청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눈이 내려앉은 기와지붕 아래에서
임청각은 단순한 고택을 넘어
세월을 견뎌온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2. 임청각, 조상의 민족혼이 숨 쉬는 집
임청각은 규모나 건축 양식보다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의미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종가로,
한 가문에서만 아홉 분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이 집에는 굴하지 않는 의지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민족혼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겨울의 적막한 공기 속에 서 있노라면
그 정신이 지금도 이 공간 어딘가에
고요히 머물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 중에서 그려진 조용한 저항과
말없이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모습은
임청각이 품고 있는 역사와도 닮아 있습니다.

임청각 군자정
총 대신 결심으로,
외침 대신 침묵으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속 장면을 넘어
이곳 임청각의 실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겨울의 임청각에 서 있으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무거운 현실의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tvn 미스터선샤인 한 장면
3. 겨울이 더 잘 어울리는 이유
임청각은
화사한 봄보다는
절제된 겨울 풍경과 더욱 잘 어울립니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와
비어 있는 사랑채 마루,
그리고 차갑게 얼어 있는 흙마당은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걷어낸 모습입니다.

그 담백함 속에서
이 집이 감당해야 했던 선택과 희생이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전해집니다.

배산임수형 임청각(영남산과 낙동강변 사이에 터 잡은)
겨울의 임청각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임청각에 대한 간략한 소개>
임청각은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조선 중기 대표적 양반가옥으로,
안동지방 전통 사대부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종택입니다.
대대로 학문과 예절, 충절을 중시해 온 명문 사대부 집안의 터전으로,
안동이 ‘유교 문화의 본향’으로 불리게 된 배경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임청각은 본래 99칸에 이르는 대규모 저택으로,
안동 사대부 가문의 위상과 생활 질서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철길을 임청각 한가운데로 관통시키며,
상징적 공간이던 99칸 집을 물리적으로 두 동강 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건물과 마당이 사라졌고,
임청각은 한 가문의 집을 넘어 민족의 자존이
훼손된 현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입니다.
이상룡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인물로,
말이 아닌 실천으로 독립을 선택한 대표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만주로 망명할 당시
임청각과 토지, 전답 등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재산 규모는 수만 석의 곡물에 해당하는 거대한 부로 추정되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는 재산을 바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집안의 노비들까지 모두 풀어주었으며,
이후 가족들은 북간도 땅으로 건너가
‘북간도에 부는 바람’이라 불릴 만큼 혹독한 추위와 가난,
굶주림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독립의 뜻을 꺾지 않았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며 항일 투쟁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결단의 역사를 품은 임청각은,
안동 사대부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리고 독립운동의 숭고한 가치를
오늘까지 묵묵히 전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4. 철길로 훼손된 집, 그러나 꺾이지 않은 정신

임청각 배경 민화(작자 미상)
일제강점기,
일제는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의 생가인
임청각의 기운을 꺾고자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99칸에 달하던 대저택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의 형태는 잘려 나갔을지라도
조상의 정신과 민족혼만큼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겨울에 이 철길 앞에 서면
그 상처와 아픔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임청각에서 바라보는 용상동으로 놓인 다리(50년 전 나루터가 있었음)
5. 겨울 임청각에서 꼭 느껴보셔야 할 장면

임청각 전경(일제의 만행으로 철길로 나누어진 옛 모습의 절반)
첫째, 눈 덮인 솟을대문과 기와의 선
둘째, 사람의 기척이 사라진 사랑채 마루
셋째, 철길과 맞닿아 있는 훼손 구간
넷째, 낮은 겨울 햇살이 머무는 안채 공간

빛바랜 임청각 군자정 사진
사진 한 장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머무는 시간이
임청각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 줍니다.
글 마무리 — 겨울에 마주하는 조상의 민족혼
임청각은
스스로 웅장함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비극적인 역사를 과장하여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긴 시간을 견뎌왔을 뿐입니다.
차디찬 겨울의 임청각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이 집을 지켜온 것은
기와나 기둥이 아니라
조상님들의 민족혼이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눈 내린 날 안동을 방문하신다면
임청각 앞에서는
잠시 발걸음을 늦추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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